01. Funeral
서울 변두리의 W종합병원의 제 4분향소.
한참을 고민한 후에야, 저녁 늦게나 빈소를 찾았다.
그곳에서 본 그의 얼굴은 그저 환하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당연히, 영정사진일 뿐이니 그렇겠지만, 그렇게 환하게 보일줄은 미처 몰랐다.
여러번 얼굴을 보았던 그의 어머니는 내 얼굴을 보고는, 이내 눈물을 쏟으셨고, 그의 남동생은 애써 눈물을 참는 기색이 역력했다.
빈소를 지키는 사람은 조촐했다. 그의 부모님과 남동생이 전부.
그도 그럴 것이 어리다면 어린 나이에 요절한 그에게 배우자며, 자식이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사회 저명인사인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손님만이, 젊은 나이에 떠나버린 그를 추모하며, 분향을 올릴 따름이었다. 가끔씩, 소식을 들은 낯익은 얼굴들이 보이기도 했다.
개중에 몇몇은 눈물을 쏟기도 했고, 그의 어머니를 위로하기도하며, 그의 생전의 이야기들을 나누기도 했다.
그 이야기들을 옆에서 들으며 잊고 있었던 그의 모습들이 떠올라 가슴을 에려왔다.
다시 한번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환한 모습의 그는 그저 그런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원망도, 탄식도, 아쉬움도, 아픔도 없는 그런 평안한 얼굴로 그저 바라만 볼뿐이었다.
눈시울이 시큰거리며 촉촉히 젖어 들었다.
한번 보고 싶어 하더라는 친구의 말을 애써 무시한 것이 후회로 남았고, 그의 소식을 들으며, 부정적인 말과, 때론 그의 험담만을 늘어놓았던 어리기만 했던 내 모습을 떠올리며 씁쓸해 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내 어깨를 쳤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친구인 L양이었다.
"언제왔어?"
눈물을 보이기엔 너무도 민망했기에, 애써 아닌 척 하며 대답했다.
"..조금 전에."
그러고 보니, L과도 꽤나 오랜만이다.
"그러고 보니 오랜만이네..우리."
"뭐, 그렇지. 너나 나나 일이 있으니까."
"..그렇지.. 근데, K는?"
"아아, 밖에. 담배한대 태우러 나갔어."
"..그래.."
얼굴을 빤히 쳐다보던 L은 이내 결코 듣고 싶지 않았던 질문을 해 왔다.
"울었어?"
"...아니."
"..흐응. 아닌게 아닌데. 그리고, 넌 좀 울어도 돼."
"그런가.."
아니, 생각해보면 내겐 그를 위해 울어줄 자격조차 없었다.
그렇게 매몰차게 밀어내고, 그의 마음에서 내 흔적마저 지우게끔 해왔으니.
그렇지만, 그렇게 해왔던 내 행동들 때문에 그의 죽음이 더욱 가슴 아픈지도 모른다.
"A는?"
"...안와.."
나는 애써 대답했다.
A에게 전화를 했을 때, 그녀의 반응은 의외로 냉담했다.
A에게 있어 R은 전혀 모르는 사람도 아니었다.
분명 R은 나와 헤어지기 전까지 A를 무척이나 챙기기도 했고, 셋이 같이 놀기도 했을 정도로 스스럼 없이 대해주었다.
내가 보기에도 무척이나 잘해준다고 느낄 정도로.
A의 고민상담도 자주해주고, 때론 언니처럼 다독여 주기도 했었다.
그런데, 나와 재결합한 A는, R과 모든 관계를 끊으라고 강요했고, A를 잃고 싶지 않았던 난 그 말대로 따랐다.
차마 얼굴을 보고는 말을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의 눈물도 무서웠고, 그의 눈을 볼 자신도 없었다.
더군다나 극도로 화가 난 그는 정말이지 무서웠다.
그래서 소심하게도 그가 말을 잘 잇지 못하는 넷 상으로 결별선언을 했다.
내 인생에서 너를 지웠으면 좋겠다.
너와 만나지 않았다면 좋았을 거라고.
할 수만 있다면 아예 내 머릿속에서 너라는 존재를 파 내버리고 싶다고.
R은 만나서 이야기 하자고 하다가, 끝내 내가 거부하자 그저 침묵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가 울고 있음은 내가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
원래 그는 감정이 여린, 그런 사람이니까.
그리고, 결과적으로 몇 년을 나와 R은 그렇게 모르는 사람으로 지냈다.
"하긴, 여길 어떻게 오니."
L의 말이 마음 한구석을 찔러왔다.
"그렇게 상황을 만들고, 너와 친구로조차 있을 수 없게 한데다가, R 스스로의 존재마저 부정하게 했는데, 여길 올 수 있으면 강심장이지. 아니면, 너 얘기도 안 했니?"
차마 사실을 말할 수도 없어,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뭐. 걔도 이런 거 알면 많이 심란하겠네."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L은 그 이상 말을 하지 않았지만, A에 대해 많은 생각이 오가고 있음이 분명했다.
나 스스로가 연인인 A에 대해 묘한 감정이 있는데, L인들 어찌 생각할지는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