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름지기 포인트는 가는허리.
통굽힐이 왜이렇게 좋은지...누가좀 알려줄래요?
라는것은 그저 타이틀일뿐이고, 오늘은 옆길로 새서 창세기쪽 얘기를 살포시 해보려 한다.
흔히들 "카인"이라는 이름은 많이 들어보았을것이다.
잘 알듯이 1)인류최초의 "살인자". 반대로 아벨은 인류 최초의 "피해자"라 할 수 있다.
성경을 보면, 아벨을 죽인 카인은 사람들을 떠나게 된다.
그런데, 과연 "저주받은 카인[카인=가인]"만이 죄인인가.
[성경에 의구심을 갖자면 한도 끝도 없거니와, 그것에 조목조목 치고들어가면 복잡해지므로 이 글에선, 이것과 관련한것만 다루도록 할 것이다.]
우리의 법을 살펴보면, 살인을 저질렀을 경우, 그 동기와 사건경위를 먼저따진다.
그런데, 성경을 살펴보면, 카인에 대한 말은 단 한줄뿐이다.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 이로서는, 아벨이 카인에게 어떠한 말을 했으며, 카인의 살인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조차 알 수도 없다.
어째서 그러한것들이 성경에서 빠졌을까.
앞의 구절들을 보면, "아벨의 제물과 제사는 받고, 카인의 제물과 제사는 받지 않아 분한 카인의 안색이 변하는 장면이 있다. 어째서일까. 단지, 자신의 제사만 받지 않아서? 편애라 느껴서? 단지 그것뿐일까?
여기서 몇가지 유추해 볼 수 있다.
첫째, 카인의 죄를 합리화 시키기 위하여 구절이 빠져있다.
둘째, 다른 외경들처럼 그 것에 대하여 다룬 성경이 편집시 제외되었다.
셋째, 정말 카인이 단순해서 그러한 이유로 아벨을 죽였다.
객관적으로 볼때, 세번째 이유는 답안으로는 무언가 부족하다. 정확히는 "탐탁치 않다".
만물의 위에 있기위해 세워진 종족이, 그것도 시조에 가까운 그가, 그러한 이유로 "최초의 살인"을 저질렀다고 보긴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럼 첫째와 두번째의 이유를 살펴보자.
두번째 이유를 사실이라보면, 충분히 가능성은 있지만, 구약에 관한 해석은 불분명할 수도있고, 외경의 발견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므로 접어두도록 하기로한다.
내 주관적인 생각으로는 "카인이 아벨을 죽이게 된 과정에서 무엇인가가 있었고, 그 것때문에 카인이 아벨을 죽이게 된 것이 아닐까" 한다.
성경에서 "질투"의 감정이 나온것은 단연 카인의 내용에서 처음이다. 그럼에도 불구, "질투"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다. 하나님의 사랑에 "질투"한 카인이 아벨을 죽인것이라 해석되는 성경에 질투가 언급되지 않다니, 조금 어색하지 않은가.
제사를 받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건간에, 적어도 그 제사를 받아주지 않았단 이유만으로 동생을 죽일수 있는 사람은 없을것이다.
때문에, 내가 내린 결론으로는 카인뿐 아니라, 아벨도 카인에게 "살의"를 품게한 죄인이라는 것이다. 아벨이 정말 100% 순수히 형을 대하였다면, 과연 카인이 아벨을 그리할수 있었을까.
[라고해도, 기독교적 입장에서보면 아담과 하와이래의 모든 인류는 죄인이라니, 할말 없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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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1. 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니라 그 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 - 창세기 4장 8절
ps. 테클 물론 환영합니다만, 신앙이 없네, 이런말을 듣는건 사절합니다.
※ 글에 앞서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라는 짧은 경고
이 글은 극히 주관적인 입장에서 쓰여졌지만, 상당시간 생각한뒤 쓰는 글입니다.
이유없는 테클은 주저없이 거절하겠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을 정신병자로 만들 생각은 없을 뿐더러, 글의 시점은 '상담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제 주변인들을 대상으로 사고하였으며, 쓰여진 글임을 미리 밝혀두는 바입니다. ※
트라우마라는 말은 들어본적이 있으리라.
그러나, 그에 대해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의학용어로 외상이라고 정의하는 트라우마.
일반적으로 심리학적의 정의인 정신적인 외상, 영구적인 정신장애를 남기는 충격을 의미한다.
트라우마는 선명한 시각적 이미지를 동반하는 일이 많으며, 이러한 것들은 장기적으로 남게 되는데
트라우마의 예로는 사고로 인한 외상이나 정신적인 충격때문에 그 당시와 비슷한 상황이 되었을때 불안해 한다.
극단적일 경우 공포로 떨거나, 난데없이 우울해지며 눈물을 쏟는 등의 이상현상을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당시에 느꼈던 고통을 다시금 떠올려지는 상상으로 인한 고통또한 트라우마를 가진 이를 더욱 힘들게 한다.
트라우마의 치료는, 그 원인을 알고 그 것을 제거하는데 있지만, 대부분은 그것마저 쉽지가 않다.
첫째는 그 이유라는 것이 쉽게 찾아질만한 것이 아닐뿐더러,
둘째는 원인을 찾는다 해도, 기억을 지우는 것이 말처럼 쉬운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애써 지운다 해도 애써 잊는다해도, 사람의 일이 말처럼 그리 쉬운것이던가.
트라우마의 원인은 사고에 의한 트라우마와 쇼크로 인한 트라우마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대형사고라거나, 교통사고 등의 신체적인 고통을 동반하여 공포로 뇌리에 새겨진 트라우마.
그리고, 정신적인 충격, 스트레스, 관계에 의한 쇼크로 생긴 트라우마.
사실 둘은 그다지 다르지 않다.
충분히 둘다 고통스러울 것이고, 벗어나기도 쉽지만은 않다.
전자의 경우, 그 상황이 재현될경우 패닉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을것이고.
후자의 경우, 그 사건과 관련된 실마리에 몸을 떨기도 할것이다.
때론 트라우마 덕에 일에 지장을 주거나, 학업에 지장을 주는일도 허다할테고 말이다.
느닷없이 이런 글을 쓰게 된 이유는 하나다.
생각외로 트라우마를 지고 사는 사람은 적지않다.
트라우마는 그저 정신병의 한 종류가 아닌, 현대인이 하나씩은 가지고 있을지 모르는 지병 같은 존재로 다가오고 있다.
때문에 본인도 모르는 새에 지니고 있는 트라우마가 어쩌면 더 무서운 것이다.
가끔 자신도 모르게 어떠한 일을 주저한 적이 있는가.
아니면, 이유도 없이 눈물 흘려본 적이 있는가.
멍한 상태로 걷다보니 자신도 모르는 장소에 와있다거나한 적은 없는가.
또는 어떠한 장소에 알 수 없이 거부감이 드는가.
해당사항이 있다면, 당신도 어떠한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지 한번쯤 생각해보는 것이 좋을것이다.
물론, 과민한 반응이다. 라고 할 사람도 있을것이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랬고, 조심해서 나쁠 것이 어디있겠는가.
현대인 열이면 아홉은 가지고 있다는 정신병.
미리 알고 조금씩 고쳐보는 것은 어떨까.